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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6 07:26

[미얀마] 미얀마 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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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개황(Naver 지식백과)

 

국제정음선교회(2014.011.20.)

0. 미얀마의 개황

C:\Users\JCH\AppData\Local\Temp\Hnc\BinD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 대륙 사이에 있는 나라이다. 188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아시아 식민지의 거점이 되었고 1948년 1월 4일 영국에서 독립하며 국호를 버마연방(Union of Burma)이라 하였다. 1989년 국호를 미얀마연방(Union of Myanmar)으로 개칭하였고, 2010년 11월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화폐: 차트(Kyat, KS), $1≈980KS, 언어: 미얀마어

 

1. 미얀마의 지리

C:\Users\JCH\AppData\Local\Temp\Hnc\BinD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경 92°~102°, 북위10°~28°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안다만(Andaman)해와 마타반(Martaban)만, 남서쪽으로는 벵골(Bengal)만을 접하고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타이(1,800㎞), 라오스(235㎞), 북쪽으로는 중국(2,185㎞), 서쪽으로는 인도(1,463㎞) 및 방글라데시(193㎞)와 접경하고 있다. 접경 지역의 총길이는 5,876㎞에 이른다. 해안선의 길이는 2,051㎞에 달하며, 면적은 676,577㎢로 한반도의 약 3배 규모이다.

C:\Users\JCH\AppData\Local\Temp\Hnc\BinD

 

2. 미얀마의 기후

미얀마의 기후는 고온다습한 열대 몬순기후이다. 그러나 북부 지방은 아열대성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27.4℃이고, 연평균 강우량은 2,513㎜다. 11월~2월 중 평균 최저 기온은 17℃이고, 3월~5월 중 평균 최고 기온은 40℃ 이상이다. 여름은 2월 말 ~ 5월 중순이고, 겨울은 11월 초 ~ 2월 중순이다. 미얀마의 겨울 날씨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와 유사하다. 우기는 과거에는 5월 중순 ~ 10월 중순이었으나, 1970년대 말 이후 지난 30여 년간 5월 말 ~ 9월 중순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3. 미얀마의 자연재해

2011년 3월 24일 미얀마 동부의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황금의 삼각지대) 지역에서 진도 7.0의 지진이 발생하여 70여 명이 사망하고, 12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약 400만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300여 채의 주택, 30여 개 종교 시설, 11개 학교, 병원 및 일부 공공 시설이 붕괴되었다.

2008년에는 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가 미얀마를 강타하여, 주택 45만 채가 파괴되고 35만 채가 손상되었다. 피해 지역의 의료 시설 75% 및 4000여 개 학교가 파괴되었고, 60만 헥타르의 농지가 범람하였으며, 50%의 가축이 익사하였다. 이로 인해 2008년도 추정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의 2.7%에 해당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우기(5월~9월)에 열대성 소나기가 심하게 내리는 경우는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이므로 유의해야 하며, 배수 시설이 열악하여 도로가 범람하는 경우가 많고, 강풍으로 가로수가 갑자기 부러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환절기(3월~4월, 10월~11월)에는 평상시보다 뎅기열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이질성 장염도 발병한다. 또한 길거리에 주인 없는 개가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고 광견병 감염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4. 미얀마의 역사

미얀마의 역사는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여러 종족의 이동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미얀마에는 서력기원을 전후하여 인도로부터 농업 기술과 불교·힌두교가 전해졌고, 이후 몬족·모족·미얀마족이 차례로 흥기하였다. 18세기에는 몬족이 다시 미얀마족을 정복하였으나, 이내 미얀마족이 전국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때까지 다고웅이라고 불리던 도시를 랑군(오늘날 양곤)으로 개명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미얀마는 영국의 침입을 받아 쇠락해 갔고, 1885년 영국 식민지로 전락해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되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48년 1월 4일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완전한 독립 국가가 되었다.

 

미얀마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가. 미얀마의 고대 역사와 왕조 시대

미얀마의 고대 역사는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파간(Pagan)왕조에 의해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루었고, 몽골의 침공의 분열되었다가 퉁구(Toungoo)왕조, 콘바웅(Konbaung)왕조 시대를 거쳤다.

1) 고대(BC 5세기 ~ AD 11세기 중반)

티베트 방면에서 티베트 및 버마어를 사용하는 여러 부족들이 남하하여 1044년까지 할거하였다. BC 480년경 미얀마에 진출한 몬족(Mon族)은 BC 3세기에 첫 번째 왕국인 수반나품(Suvarnabhumi, 황금의 땅)를 건설하였다. 몬족은 중앙아시아에서 미얀마로 이주해 온 최초의 종족으로 언어상 ‘몬-크메르어족’에 속한다. 이들은 타이, 캄보디아 근처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2) 파간 왕조(1056년~1287년)

1056년 아노우라타(Anawrahta, 재위 1044~1077)가 몬족(Mon族)을 정복하고 중부 미얀마를 장악하여 파간(Pagan)왕국을 창건해 버마족(Burma族)에 의한 최초의 통일을 이룩하였다. 아나우라타 왕은 몬족(Mon族)의 불교인 테라바다(Theravada) 불교[상좌부(上座部) 불교]로 개종하여 미얀마 불교의 기틀을 완성하였다. 테라바다 불교는 미얀마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3) 몽골의 침공과 분열(1287년~1531년)

1287년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이 이끈 몽골군의 침공으로 파간왕조는 붕괴되었으며, 몽골군은 1299년에 퇴각하였다. 이후 200년간 샨족(Shan族), 버마족(Burma族), 몬족(Mon族) 등 각 소수민족 국가가 병존하면서 패권 쟁탈을 위한 각축전을 전개해 몬족과 샨족 간에 40년 전쟁(1385년~1425년) 등이 벌어졌다.

 

4) 퉁구 왕조(1531년~1752년)

1531년 타빈슈웨티(Tabinshwehti)가 3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미얀마를 통일하여 페구(Pegu)에 퉁구(Toungoo)왕조를 건립하여 두 번째로 버마족(Burma族)에 의한 통일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1752년 프랑스의 무력 지원을 받은 몬족(Mon族)에게 패망하였다.

 

5) 콘바웅 왕조(1758년~1886년)

1758년 알라웅파야(Alaungpaya)이 다시 몬족(Mon族)을 격퇴하고, 슈에보(Shwebo)에 콘바웅(Konbaung)왕조를 건립하였다. 이는 버마족에 의한 세 번째 패권 쟁탈이었다. 콘바웅왕조는 미얀마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나. 미얀마의 식민지 시대와 사회주의 시대

1) 영국·일본 식민지 시대(1886년~1948년)

콘바웅(Konbaung)왕조의 세력 확장은 결과적으로 당시 인도 내 영국 세력과 충돌을 가져왔다. 제1차 전쟁(1824년~1826년), 제2차 전쟁(1852년), 제3차 전쟁(1885년)을 겪은 뒤 콘바웅왕조는 결국 패망하였고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되었다. 1937년 4월 영국 의회가 개정 버마통치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버마는 인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식민지와 자치령의 중간적 법적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버마에 남기관(南機關)을 설치하여 ‘아웅 산(Aung San)’ 장군을 중심으로 한 ‘30인의 동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버마 독립의용군을 조직하여 1942년 3월 양곤(Yangon)을 점령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일본은 버마를 지배하였다. 버마 독립을 위해 영국군 및 일본군과 무장 투쟁을 벌여 국민적 영웅이 된 아웅 산 장군은 1947년 7월 각료회의 도중 암살되었다. 이후 우누(U Nu)가 버마 임시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1947년 12월 영국 의회는 ‘버마 독립 법안’을 가결하였고, 독립 기반이 형성되었다.

 

2) 버마 독립과 우누의 사회주의(1948년~1962년)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는 영국 연방에서도 탈퇴하였다. 우누(U Nu)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연맹(AFPFL, Anti-Fascist Peoples' Freedom League)이 집권해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대외적으로는 엄정 중립주의를 표방하였다. 우누 총리는 1962년 3월 네윈(Ne Win) 총사령관의 쿠데타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10여 년간 재임하면서 신생 국가의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공산당과 소수민족의 반란에 따른 내전 등으로 집권 기간 중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다. 버마식 사회주의(1962년~1988년)

1962년 3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Ne Win)은 1963년 1월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적 정신 가치를 접목시킨 이론인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발표하여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 이념을 정립하였다. 버마식 사회주의 개혁 작업의 핵심은 국유화 추진이었다. 그러나 생산·서비스 등 전 경제 분야에 걸친 국유화 추진은 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민간 부문의 활력 감소를 초래해 경제 침체 현상이 지속되었고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1981년 11월 네윈 대통령은 건강 악화와 국민들의 평화적 정권 교체 열망으로 우 산 유(U San Yu)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당 의장직만 보유하였다. 그러나 네윈은 카리스마적 지도력으로 계속 실권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버마식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 등에 따른 국민적 불만은 1988년 3월부터 수개월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발하였고, 군인과 민간인의 충돌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결국 네윈은 1988년 7월 사임하였다.

 

5. 미얀마의 정치체제

미얀마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2008년 5월 국민투표에 의해 채택된 신헌법에 따라 2010년 11월 7일 총선을 실시하였으며, 2011년 1월 31일 의회를 개원하였다. 같은 해 2월 4일, 연방 합동의회는 상·하원 및 군부에 의해 각각 추천된 3명의 부통령 중 하원 추천 부통령인 테인 세인(Thein Sein) 총리를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은 3명에서 2명으로 바뀌었다. 군 출신 의원단이 추천한 티하 투라 틴 아웅 민트 오(Thiha Thura U Tin Aung Myint)와 상원에서 추천한 사이 마묵 캄(Sai Mauk Kham)가 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총리 직책은 폐지했다. 또한 기존의 군정 통치 기구인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는 2011년 3월 30일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신정부에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해체되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2011년 3월 30일 민선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테인 세인은 국가평화발전위원회 통치 시기인 2007년 10월부터 2011년 대통령 취임 시까지 총리로 활동하면서 각종 정상 회담에 참여하였다.

2011년 3월 30일 출범한 미얀마 민선 정부는 이전 정부인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정부의 정책을 승계하였다. 민선 정부는 3대 국가 목적과 12대 국가 목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가. 3대 국가 목적(Causes)

· 연방의 유지

· 국가적 연대의 유지

· 주권의 영구화

 

나. 12대 국가 목표

정치 분야, 경제 분야, 사회 분야 각각에 4대 목표를 정하고 이를 12대 국가 목표로 삼았다.

1) 정치 분야 4대 목표

· 국가의 안정, 사회의 평화, 법과 질서의 보급

· 국민 재통합

· 신헌법 제정

· 신헌법에 따른 새로운 현대 선진국가 건설

2) 경제 분야 4대 목표

· 농업 발전을 기반으로, 그 외 경제 분야의 전반적인 발전

· 시장경제 체제의 적절한 진전

· 국내외 기술과 투자 유치를 통한 경제 발전

· 국가와 국민의 국가 경제 형성 주도

 

3) 사회 분야 4대 목표

· 전 국민의 사기 및 도덕성 고양

· 국가 위신과 청렴성의 고양 및 문화 유산과 국민성 보존

· 패기 있는 애국심의 고양

· 국가 전체의 보건 및 교육 수준 향상

 

다. 미얀마의 행정부

연방 정부와 14개의 지방 정부로 구성되어 있다.

1) 연방 정부

연방 정부는 기존의 32개 부처에서 34개 부처로 확대 개편되었다. 대통령실 장관(Ministry of President's Office)과 미얀마산업개발 장관(Ministry of Myanmar Industrial Development)을 신설하였다. 의회에서 30명의 내각 명단이 승인되어 대통령실에 2명의 장관급이 임명되었으므로 5명의 각료는 2개 부처 장관을 겸직한다.

2) 지방 정부

미얀마의 지방 정부는 버마족이 거주하는 7개 구역(region)과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7개 주(state)로 이루어진다. 14개 지방 정부는 주지사(Chief Minister)를 선출하며, 각 지방 정부마다 9명의 지방 정부 장관들을 임명한다.

 

라. 입법부

1988년 9월 소몽(Saw Maung) 국방장관 겸 총사령관이 주도한 친위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이하 약어)라는 군사 정부가 등장함에 따라 미얀마 의회는 해산되었다. 1990년 5월 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실시한 결과,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민주국민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압승하였으나, SLORC 군사 정부는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무효를 선언하였다. 당시 총선에서 민주국민연맹은 총 485석 가운데 396석을 획득해 82%를 차지하였다.

이후 민주화 7단계 로드맵에 따라 2010년 11월 7일 총선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2011년 1월 31일 상·하원 및 지방의회가 20여 년 만에 개원하여 신정부 구성 작업 등을 마치고 3월 말 회기를 종료하였다.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이 상·하원 및 지방의회 선거에서 평균 76.5%의 압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군 출신 의원단 25%를 합칠 경우 이들이 각급 의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연방의회는 하원(Pyithu Hluttaw)과 상원(Amyotha Hluttaw), 상·하원 합동 연방의회(Pyidaungsu Hluttaw)로 구성된다. 연방의회 지도부는 다음과 같다.

하원 의장은 전 군참모장이었던 투라 우 쉐 만(Thura U Shwe Mann)이고, 부의장은 우 난다 조 스와(U Nanda Kyaw Swar)다. 그리고 상원 의장은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우 킨 아웅 민(U Khin Aung Myint)이고, 부의장은 우 마야 네인(U Mya Nyein)이다. 상·하원 합동 연방의회 의장은 우 킨 아웅 민 상원 의장이 겸직한다.

 

마. 정당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이하 약어)는 1988년 9월 이전까지 유일 정당이었던 버마사회주의계획당(BSPP, 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을 해체하고, 다당제하에 총선을 실시하기 위해 정당 설립을 허용하였다. 그 결과 1990년 5월 27일 총선거를 실시할 당시 235개의 정당이 등록하였다. 그러나 군사 정부가 선거 전후 정당 무효 조치를 실시하여 10개 정당만이 합법 정당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5개 정당은 유명 무실한 상태였으므로 2010년 초까지 5개 정당만이 존재하였다.

2010년 총선 준비를 위해 기존 정당의 재등록 및 신규 정당 등록 작업이 진행되어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이외에 40여 개의 정당이 등록하였다. 그리고 총선 결과 21개 정당이 의석을 확보하였다.

한편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민주국민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은 선거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선거 불참을 결정하고 정당 재등록을 포기하여 정당 자격을 상실하였다.

1) 통합단결발전당(USDP)

1993년 9월 당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이하 약어) 정부는 연방단결발전연합(USDA,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Association)이라는 관변 단체를 만들어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성했다. SLORC 정부 측 주장에 따르면 회원은 2200만 명이다. 2010년 5월 총선에 대비하여 이 조직을 통합단결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이라는 이름의 여당으로 전환하고 정당으로 등록하였다.

총선 전에는 테인 세인(Thein Sein) 당시 수상을 당의장으로 하고 군사 정부의 각료급 인사들이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으나, 당의장이 민선 정부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당 지도부를 새로이 정비하였다. 2011년 5월 하원의장인 투라 우 쉐 만(Thura U Shwe Mann)이 당의장으로 임명되었다.

 

2) 민주국민연맹(NLD)

민주국민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이하 약어)은 1990년 5월 총선에서 총 485석 가운데 396석을 획득(총의석의 82%)하여 압승하였다. 그러나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이하 약어) 측이 동 총선은 전 국민의 의사를 전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NLD에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다.

2010년 총선 참여를 위해서는 기존 정당들도 재등록 절차를 마쳐야 했는데, NLD는 선거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정당 재등록을 포기함으로써 정당 자격을 상실하였다. NLD는 총선 이후, 정당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정당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NLD는 현재 사회 활동을 중심으로 대국민 접촉 및 홍보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NLD와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는 일부 국민과 미국 등 서방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나, 지도부 전원이 고령이며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3) 민족민주세력(NDF)

민족민주세력(NDF, National Democratic Force, 이하 약어)은 민주국민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이하 약어)이 총선 불참을 결정하자 당의 공식 노선을 반대하고 제도권 정치 참여를 지지하는 일부 NLD 계열 인사들이 별도로 조직한 정당이다. NLD 측은 NDF를 당 노선을 부정한 변절자로 규정하고 선거 과정에서 협조를 거부하였다. NDF는 총선을 통해 의회에 진출하였으나 개표 시비가 발생하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4) 샨족민주당(SNDP)

샨족민주당(SNDP, Shan Nationalities Democratic Party)은 소수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정당이다. 1990년 선거에서 제2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리고 2010년 선거에서도 연방의회 상·하원 진출에 있어 여당에 이어 제2당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바. 사법부

미얀마의 사법부는 법원과 검찰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법원

가) 대법원

대법원장(Union Chief Justice)과 6명의 대법원 판사(Union Supreme Court Judge)에 대한 인선안은 대통령이 추천하고 연방의회의 승인에 따라 결정된다. 2011년 4월 기준 신정부의 대법원은 연방대법원장과 연방 대법원 판사로 구성된다.

나)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에는 9명의 재판관이 있는데, 이들은 대통령, 하원의장, 상원의장이 각각 3명씩 추천하고 연방의회의 승인에 따라 결정된다. 민선 정부 헌법재판소장은 우 테인 소(U Thein Soe)이며, 2010년 11월 총선 당시 중앙선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 검찰청

대통령이 추천한 검찰청장 및 검찰차장 인선안을 연방의회가 승인한다. 민선 정부 검찰청장은 툰 신(Tun Shin)이다.

 

 

6. 미얀마의 향후 정세 전망

2011년 3월 군사 정부 통치기구가 해체되고 모든 권한이 민선 정부에 이양되면서 미얀마 사회 내적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가. 민선 정부 출범에 따른 통치 체제의 변화

2011년 1월 31일 연방의회가 개원되고, 이어 3월 30일 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7단계 민주화 로드맵이 일단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다. 이전에는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를 정점으로 하는 일관된 군사 통치로 국민들을 통치해 왔으나, 군부와 독립적인 행정부가 구성됨에 따라 통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울러 여당 의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야당 대표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방의회 및 지방의회가 활동을 개시하면서 투명성 및 책임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 군의 영향력 지속

근본적인 체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군 총사령관이 의원의 25%를 군 인사로 임명하고, 국방장관 등 3개 부처 장관 지명권을 행사하는 등 군부의 정치 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유사시 확대된 군의 역할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당분간 군의 영향력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정부 출범 이후에도 막후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탄 슈웨(Than Shwe) 전 국가평화발전위원회 의장의 역할 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현재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기존 군정 지도부들 간의 권력 투쟁이 한동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정국 운영의 변수가 상존한다.

다. 인권 상황 및 야당의 동향

군정은 총선이 실시된 직후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 시한이 만료되자 추가적인 제한을 가하지 않고 2010년 11월 13일 수 치 여사를 가택연금에서 해제했다. 과거 가택연금 해제 때와는 달리 수 치 여사의 자유로운 활동을 조건 없이 허용하여 수 치 여사는 대내외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

군정 시절에도 간헐적으로 사면 조치가 있었으나, 신정부 출범 이후에도 2000여 명을 상회하는 정치범 또는 양심수들이 여전히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주요 야당 및 국제 사회는 미얀마 정부에 정치범 석방을 계속 요청하고 있다.

 

라. 국제연합(UN)의 중재 활동과 국제 사회의 동향

2008년 5월 2일 ~ 3일 이라와디(Irrawaddy) 주 및 양곤(Yangon)을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로 인해 미얀마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피해 상황을 살펴보면 사망자 84,537명, 실종자 53,836명, 재산 피해액 4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같은 해 5월 25일 반기문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사무총장이 참석한 국제서약회의가 양곤에서 개최되는 등 국제 사회가 폐쇄적인 미얀마를 대대적으로 긴급 지원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미얀마 특사였던 감바리(Gambari)가 2009년 말 수단공화국 다르푸르(Darfur) 지역을 담당하게 되면서 특사직을 사임하고, 2010년 초부터는 비자이 남비아르(Vijay Nambiar) 국제연합 사무총장 비서실장이 미얀마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비자이 남비아르는 총선이 실시되고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이후 2010년 11월 말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으며, 수 치 여사와 면담하였다.

2011년 초 미얀마 의회가 개원되고 민선 정부 대통령이 선출되자 반기문 국제연합 총장은 이를 환영하며 앞으로의 협력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개선될 경우 반기문 총장의 추가 방문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7. 2008년 신 헌법

가. 규율 있고 번영하는 진정한 다당제 민주주의 추구

· 군부(Tatmadaw)의 국가의 정치적 리더십 역할 참여 규정

 

나. 연방제 국가구조: 14개 주 및 연방구/6개 자치구

· 7개 구역[(region), 버마족 거주], 7개 주[(state), 소수민족 거주]

· 연방구[수도 네피도(Naypyidaw)]

· 6개 자치구: 나가(Naga), 다누(Danu), 파오(Pa-O), 팔라웅(Palaung), 코캉(Kokang), 와(Wa) 자치구

 

다. 국가 수반: 대통령(President of the Union)

· 대통령선거인단 3개 그룹(국민의회, 민족의회, 연방의회 군의원단)이 각 1명씩 임기 5년(중임 가능)의 부통령 3인 선출

· 대통령선거인단(연방의회 의원전원)은 3명의 부통령 중에서 투표로 대통령 선출

 

라. 연방의회(Pyidaungsu Hluttaw): 양원제(국민의회, 민족의회, 임기 5년)

· 국민의회(Pyithu Hluttaw, People's Cogress): 최대 440명

- 인구수 및 타운십 기준으로 선출된 의원 330명

- 군 총사령관이 지명한 군 의원 110명

· 민족의회(Amyotha Hluttaw, National Congress): 최대 224명

- 14개 주에서 각 12명씩 총 168명의 의원 선출(연방구도 이에 포함되며, 자치구 에는 각 1명씩 할당)

- 군 총사령관은 각 주에서 4명씩 군 인사를 의원으로 총 56명 지명

 

마. 행정부(연방 정부)

· 대통령(행정수반), 부통령(2인), 연방장관, 연방검찰총장

· 장관의 임명 및 임기

-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 명부를 작성하여 연방의회에 승인 요청

- 군 총사령관이 국방장관, 안보내무장관, 국경장관 등 3개 장관 후보자를 지명

- 장차관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와 동일하며, 대통령은 해임권 보유

- 군 총사령관 지명 3개 부처 장차관은 군인 신분 유지

· 국방안보위원회(NDSC, National Defence and Security Council)

- 대통령, 부통령(2인), 국민의회 의장, 민족의회 의장, 군 총사령관, 군 부총사령 관, 국방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 등 총 11인으로 구성되며, 대통령 의 주요 권한에 대해 협의(5인이 군부 인사)

 

바. 사법부

· 연방최고법원, 각주의 고등법원, 자치구 법원, 지방법원

· 헌법재판소

 

사. 군부(The Tatmadaw: Army)

· 군 총사령관(Defence Services Commander-in Chief)은 부통령급으로 군 최고지 휘관 (※ 군통수권은 대통령이 아닌 군 총사령관이 보유)

- 대통령이 국방안보위원회(NDSC)의 제안과 승인을 얻어 임명

· 군부는 군 행정 및 사법 관련 사항을 독자적으로 결정

 

아. 국가 비상사태(Provisons on State of Emergency)

· 연방 분열, 국민통합 와해 및 주권 상실을 초래할 국가비상사태

- 대통령은 NDSC와 협의 후 전국에 1년간 비상사태 선언

- 이 경우 대통령은 입법, 행정, 사법권을 군 총사령관에게 이양함을 선언하고, 연 방의회는 입법 기능이 종료되고 해산

 

자. 헌법 개정

· 국가 기본 원칙, 국가 구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구성 및 국가 비상사태에 관한 조항은 연방의회 의원 전원의 75%의 사전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개정

· 여타 규정은 연방의회 의원 전원의 75% 이상의 찬성으로 개정

 

 

8. 미얀마의 주요 인사

가. 테인 세인(Thein Sein)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1949년생이며, 국방사관학교(제9기)를 졸업하였다. 1996년 트라이앵글(Triangle) 지역 사령관,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이하 약어) 제2서기, 2004년 10월 SPDC 제1서기, 2007년 10월 총리를 역임하였다. 2011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나. 티하 투라 틴 아웅 민트 오(Thiha Rhura U Tin Aung Myint)

티하 투라 틴 아웅 민트 미얀마 부통령은 1950년생이며, 국방사관학교(제12기)를 졸업하였다. 1990년 사가잉 디비전(Sagaing Division) 111 보병대 사령관, 2003년 경보병대 33 디비전(Division) 중령·육군 중장, 2007년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제1서기, 2009년 육군대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3월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다. 사이 마묵 캄(Sai Mauk Kham)

사이 마묵 캄 미얀마 부통령은 1950년생이며, 1968년 만달레이 의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샨 문학과 문화 협회(Shan Literature and Cultural Association)’ 회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3월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라. 운나 마웅 뤈(Wunna Maung Lwin)

운나 마웅 륀 미얀마 외교부 장관은 1952년생이며, 국방사관학교(제16기)를 졸업했다. 2000년 9월 ~ 2001년 8월 주이스라엘 대사, 2001년 10월 ~ 2005년 6월 주프랑스 대사, 2006년 9월 ~ 2007년 10월 주벨기에 대사, 2007년 11월 ~ 2001년 2월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역임하였다. 2011년 4월 외교부 장관에 취임하였다.

 

마. 투라 우 쉐 만(Thura U Shwe Mann)

투라 우 쉐 만 미얀마 하원의장은 1947년생이며, 국방사관학교(제11기)를 졸업했다. 1991년 디비전(Division) 66 경보병대 군사작전사령관·준장으로 진급, 1996년 디비전 11 경보병대 사령관·소장으로 진급, 2000년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상임위원, 2003년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2010년 1월 31일 하원의장에 취임하였다.

 

바.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아웅 산 수 치 민주국민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사무총장은 1945년생으로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 산(Aung San) 장군과 도 킨 치(Daw Khin Kyi) 전 인도 대사의 딸로, 양곤(Yangon)에서 출생하였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72년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본부에서 근무하였다. 1990년 5월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가 이끈 민주국민연맹이 압승했으나 선거 무효화로 집권하지 못하였다.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995년 민주국민연맹 사무총장이 되었다. 1989년 7월 ~ 1995년 7월, 2000년 9월 ~ 2002년 5월, 2003년 5월 ~ 2011년 11월 세 차례에 걸친 가택연금을 당하였다.

 

 

9. 외교

미얀마는 중립적 입장에서 독립 자주 외교를 추진(평화 공존 5원칙)하고, 지정학적 이유로 전통적으로 대중국 및 인도 관계를 중시한다. 199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이하 약어)에 가입한 이후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ASEAN+3’ 국가 간 우호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 인권 문제 등 국내 정치 상황이 제약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미얀마의 외교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가.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1년 8월 미얀마와 영사관계를 수립하였고, 1962년 9월 총영사관을 개설하였다. 1975년 5월 16일 정식으로 수교하였으며, 2007년 현재 상주 대사가 주재하고 있다.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를 공식방문한 적이 있으나 아웅산암살폭발사건이 일어나 우리나라 정부요인이 희생당한 적이 있다.

 

양국은 1964년 6월에 무역 협정, 1972년 1월에 뉴스교환 협정, 1978년 1월 항공운수 협정, 2002년 2월에 이중과세방지 협정, 2006년 9월에 항공 협정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미얀마 수출액은 2008년 현재 2억 9,198만 달러로 주종목은 직물·기계류·목재 등이고, 수입액은 8068만 달러로 주종목은 원목과 철광 등이다. 1981년 현대건설이 7500만 달러 상당의 미얀마 최대의 댐공사를 수주한 이래 우리나라 기업의 미얀마 진출이 활발해졌으며, 2007년 현재 (주)대우, 현대종합상사, 효성, 세계물산 등 70여개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724명의 체류자가 있다. 양국의 문화교류로는 1983년 10월 우리나라 민속예술단의 미얀마 방문공연이 있었고, 1985년 2월 우리나라 상무(尙武) 축구단의 방문 친선경기와 1986년 3월 우리나라 태권도 시범단의 방문행사 등이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에는 7명의 미얀마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1년 기준 한국과 미얀마의 교역규모는 약 9억 6,550만달러이며 이 중 수출은 6억 6,690만달러, 수입은 2억 9,860만달러이다. 미얀마 통계기준으로 한국은 중국, 싱가포르, 태국에 이어 4대 수입국이다.

 

2012년 5월 이명박대통령이 공식방문하여 Thein Sein 대통령, 아웅산 수지여사를 면담하였다. 한류열풍이 일고 있으며 TV드라마와 한국 연예인(송승헌, 이민호, 송혜교, 원빈, 장동건, 최지우, 배용준, 채림 등)의 인기는 최고이며 한국어 배우기 열풍도 대단하다.

 

한편, 북한은 1975년 5월 16일 미얀마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아웅산암살폭발사건 이후 미얀마 정부가 1983년 11월 북한 정부 승인을 취소하고 공관원의 철수를 요구함에 따라 1983년 11월 4일 양측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이후 2007년 4월 26일 국교가 재개되어 2007년 현재 북한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양측은 1977년 9월에 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기본협정, 1978년 2월에 항공운수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1983년 미얀마의 대북한 단교 이후 모두 폐기되었고, 2007년 4월에 복교합의서를 교환한 바 있다.

 

나. 중국과의 관계

중국은 인도양 진출 등에 대한 지정학적 고려와 미얀마 내 원유 및 가스 확보,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관계 강화, 미얀마 내 중국계 동포 보호, 중국 남서부 지방의 시장 확보 차원에서 미얀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미얀마는 중국에 대해 국제 무대에서의 방파제 역할과 경제적 지원, 농수산물 시장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미얀마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계속되면서 미얀마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우려될 정도다.

 

양국은 이처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미얀마와 중국의 고위급 인사 교류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인사 교류를 살펴보면 2001년 12월 장쩌민(Jiang Zemin) 중국 주석이 미얀마를 방문하였고, 2004년 7월에는 킨 윤(Khin Nyunt) 미얀마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였다. 2006년 2월에는 소 윈(Soe Win) 미얀마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였고, 2010년 6월에는 원자바오(Wen Jiabao) 중국 총리가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다. 인도와의 관계

인도는 1988년 이래 미얀마 군사 정부와 관계를 단절해 왔다. 하지만 2000년 11월 마웅 예(Maung Aye)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부의장이 인도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동방 정책(Look East Policy)’을 표방하면서 실리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06년 12월 투라 우 쉐 만(Thura U Shwe Mann) 장군이 인도를 방문한 이후 인도-미얀마 국경 내 반군 세력 소탕 차원에서 반군 진압용 헬기와 순찰기를 지원하는 등 전략적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미얀마의 천연가스 개발, 파이프라인 가설을 통한 천연가스 수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동북부 내륙 지방의 인도양으로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미얀마 라카인(Rakhine) 주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한편 미얀마는 인도와 상호 국경을 인접하고 있고,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보완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중국과의 균형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요 인사 교류로는 2004년 10월 탄 슈웨(Than Shwe)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이하 약어) 의장이 인도를 방문하였으며, 2005년 3월과 2006년 3월 압둘 칼람(Abdul Kalam) 인도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2008년 4월 마웅 예 SPDC 부의장이 인도를 방문하고, 2009년 2월에는 하미드 안사리(Hamid Ansari) 인도 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2010년 7월에는 탄 슈웨 SPDC 의장이 인도를 방문하였다.

 

라. 일본과의 관계

일본은 미얀마에 군사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는 대미얀마 최대 지원국(30억 달러 차관 제공)이었다. 이후 일본은 미국 등 서방의 대미얀마 제재에 대해 적절히 보조를 맞추면서도 적극적인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일본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미얀마에 대해 강경 입장을 취해 왔으나, 민주당이 정권을 창출한 이후에는 과거 정권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미얀마 내에서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을 계속하는 한편, 주요 인사의 일본 방문 초청 등을 통해 미얀마 주요 인사와의 유대 관계를 모색하고 실무급 연수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의 정치 상황을 감안하여 대미얀마 원조를 강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나 전체 원조 예산의 조정 등으로 인해 가시적인 원조 확대에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 미국과의 관계

미국은 1997년 5월 20일 이래 대통령의 행정명령 및 2003년 7월 28일 대미얀마 경제 제재 조치 법안(Burmese Freedom and Democracy Act)을 제정해 미얀마에 대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얀마에 대한 신규 투자 동결, 고위 인사 비자 발급 중단, 미얀마 정부 자산 동결, 원조 중단, 국제금융기구의 대미얀마 금융 지원 시 반대, 대미얀마 송금 금지, 미얀마산 제품 전면 수입 금지 등이다. 미얀마에서 일어난 2007년 민주화 시위 이후 대미얀마 경제 제재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얀마에 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로 인해 재해가 발생하자 미국은 재난 복구를 위해 총 7400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미국은 오바마(Obama) 행정부 출범 후 대미얀마 정책에 대한 정책 검토(policy review)를 진행해 그동안 취해 온 제재 일변도 정책이 효과가 없었음을 인정하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 커트 캠벨(Kurt Campbell) 미 국무부 차관보가 2009년 11월과 2010년 5월 2회에 걸쳐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신정부 출범 이후에도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제재 해제에 반대하고 있어 당분간 미국의 대미얀마 제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도적 분야에 대한 지원은 확대 중이며, 대미얀마 특사를 임명하는 등 미국은 미얀마와의 지속적인 대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은 2003년 이래 매년 1회 공동입장(Common Positions)을 통해 대 미얀마 제재 수준을 재검토 중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대미얀마 제재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내용면에서는 미국이 취하고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친다. 구체적으로는 고위 인사 입국 금지, 군사 교류 금지, 기술적 지원 금지, 미얀마 정부와 국유 기업에 대한 융자 및 투자 금지, 국제금융기구의 미얀마 금융 지원 반대 등이다.

 

그러나 오바마(Obama) 미 행정부가 대미얀마 정책을 수정한 것을 계기로 유럽연합도 정책 선회를 검토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미얀마의 최근 정치 상황에 대해 일부 회원국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제재 철회를 위해서는 유럽연합 국가 간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현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얀마 신정부 출범 후 2011년 4월 제재를 연장했지만 외무 장관 등 민간 출신 4명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 제한이 완화되었다.

 

사.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유1997년 7월 미얀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이하 약어)에 가입한 이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ASEAN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회원국들과의 정상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미얀마는 ASEAN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을 고려하여 2006년 의장국 수임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2014년 의장국 수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관계

ASEAN 회원국들은 미얀마에 대한 서방의 제재는 효과가 없고 서민 고통만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반대하며 기본적으로는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의 기치하에 내정 불간섭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는 국가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 일정에 대해서는 회원국 모두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 국제기구의 미얀마 관련 논의 현황

1) 국제연합(UN)

국제연합 내의 안전보장이사회, 인권이사회 및 총회 제3위원회, 미얀마 프렌즈그룹회의 등이 미얀마 문제에 대해 관여하고 있다.

가) 안전보장이사회

하벨(Havel) 전 체코 대통령과 투투(Tutu)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주교는 2005년 9월 발표한 보고서 「Threat to Peace: A call for the UN Security Council to Act in Myanmar」에서 미얀마의 인권 상황이 국제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조속히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였다.

2007년 1월 미국이 제안한 미얀마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부결된 이후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결의안은 상정되지 않았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2007년 9월 ~ 10월 대규모 승려 시위 사태에 대해 2007년 10월 11일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이 성명을 채택하였다.

 

나) 인권이사회 및 총회 제3위원회

매년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주도로 미얀마의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다) 미얀마 프렌즈그룹회의

2007년 12월, 미얀마 문제 중재 임무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로 구성된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프렌즈 그룹(Friends Group)’이 발족되어, 사무총장 주재하에 참여국 간 협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 2008년 3월 제3차 회의 때부터 참석하고 있다.

 

2) 국제노동기구(ILO)

2000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이하 약어) 총회는 노사정 회원들에게 ‘미얀마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미얀마가 이를 이용하여 강제 노동 행위를 계속 자행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그 뒤 별다른 진전이 없자 2005년 6월에 보다 강력한 내용의 결론(conclusions)을 채택하였다. 미얀마는 이에 반발하며 2005년 10월 ILO 탈퇴를 내세우며 위협하기도 했으나, 국제 사회 여론이 악화되자 ILO 회원국 잔류 및 협력 의사를 표명하였다.

2007년 2월 ILO와 미얀마는 강제 노동 피해자 구제 메커니즘을 위한 보충 양해각서를 체결하였으며, 각서의 추가 연장에 합의하면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0. 경제

가. 경제 현황

2003년 서방 일부 국가의 경제 제재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던 2006년 이후 미얀마의 경제는 전반적으로 낮은 성장세를 시현하였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봉제업의 경우, 2007년의 시위 사태, 2008년의 사이클론으로 인한 재해, 세계 금융위기 등으로 침체되었으나, 주변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2010년 이후 호황세가 지속 중이다.미얀마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13년 5월 대우의 A-1 및 A-3 광구 가스 생산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정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예타군(Yetagun) 및 야다나(Yadana) 가스전에서 약 12억cf/d의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타이에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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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천연가스 생산량※ 출처: 국제 에너지자원협력 심포지움 발표자료(에너지 국장, 2009.3)

외국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는 전력, 석유·가스 등 일부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2009년~2010년 투자 승인액은 약 3억 달러다. 2006년 4월 타이로부터 60억 달러 규모의 수력발전소 투자를 유치하였으나 이후 실질 투자는 지연되었다. 2010년 1월부터 중국이 수력발전소 건설에 51억 달러, 홍콩이 석유·가스 개발에 44억 달러, 광산 개발에 10억 달러를 투자하였다.

미얀마의 열악한 투자 환경과 서방의 경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민선 정부 출범 이후 경제 개혁 개방 정책의 가속화로 미얀마 경제는 점진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챠트화 강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5년간 미얀마의 교역량은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2010년에는 2009년 대비 교역량이 약 20%나 증가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천연가스, 티크(Teak) 및 경재(硬材, Hardwood), 콩류, 의류, 수산물 등이다. 주요 수입품은 기계 및 운송 장비, 정유, 비금속 제품, 전기 기계, 직물 등이다.

미얀마의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 소비자물가상승률, 대출과 예금 이자, 경상수지, 외환보유고, 대외 채무 등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미얀마의 주요 경제 지표

기준: 2011년 3월

구 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GDP(십억 달러)

11.1

11.9

16.3

22.7

26.3

실질 GDP 성장률(%)

13.6

3.4

3.4

1.1

1.8

소비자물가상승률(연말, %)

14.3

28.4

28.6

16

2.2

대출 이자(%)

15.0

17.0

17.0

17.0

17.0

예금 이자(%)

10.0

12.0

12.0

12.0

12.0

FOB 상품수출(1억 달러)

37.9

45.6

61.7

66.8

68.6

FOB 상품수입(1억 달러)

17.6

23.4

29.6

34.6

40.2

경상수지(백만 달러)

576

760

1,285

1,208

705

외환보유고(백만 달러)

782

1,248

2,312

3,412

3,561

대외채무(십억 달러)

6.6

6.8

7.6

7.2

7.1

연평균 환율(챠트 : 달러)

1,095

1,280

1,290

1,185

1,055

2009년, 2010년분은 추정치, 2011년분은 예상치

 

나. 경제 정책

미얀마는 1988년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였으나 사회주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행정의 일관성 및 투명성이 저조하다. 2004년과 2009년에는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임시로 쌀 수출 금지 조치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2005년과 2007년에는 유가의 기습 인상 및 소요 사태가 발생하였다. 2006년 4월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공무원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공무원과 군인의 임금을 5배~12배나 인상하였다.

미얀마의 유가 변동 추이

기간

~ 2005년10월 20일

~ 2007년 8월 15일

현재

가솔린(챠트/gal)

180

1,500

4,200

디젤(챠트/gal)

160

1,500

4,200

CNG(챠트/kg)

-

54

273

2011년 민선 정부 출범을 계기로 공기업 민영화, 수입 자유화, 국채 발행 등 경제 각 분야에서 개혁과 개방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얀마는 경제 발전을 위해 더웨이(Dawei), 짜욱퓨(Kyauk Phyu), 틸라와(Thilawa) 등 경제특구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2011년 1월에는 경제특구법, 2011년 2월에는 더웨이 경제특구법 등을 제정하였다.2014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회의 개최 및 2015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경제 규범 통일 등에 대비하여 다중 환율 개혁, 금융 전산화, 2015년 주식시장 개설 등 각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개혁과 개방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1) 재정 정책

미얀마는 최근 세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재정 지출이 확대되고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 지속 등으로 인해 중앙은행에서 자금 차입을 통한 정부 지출이 지속될 전망이다. 미얀마 정부 통계상 재정 적자는 4% 대이지만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는 약 30%대로 추정된다. 재정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세원을 효과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 근로자는 소득세 납세 의무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세금 납부를 회피하고 있다.한편 미얀마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보건과 교육 부문의 정부 지출을 줄이고자 한다. 그러나 국방 부문의 과다 지출 및 비효율적인 공기업 운영으로 인해 예산 운영의 비효율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2) 통화 정책

미얀마중앙은행은 재무세입부(Ministry of Finance &Revenue) 산하에 있으므로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20년 만의 선거 실시로 2008년 말부터 정치가 불안해지자 투자가 위축되었고, 타이와의 국경 분쟁으로 인해 먀와디(Myawaddy) 국경 무역이 폐쇄되었으며, 보석박람회를 통해 대규모 달러가 유입되는 한편, 농산물 수출 확대 등으로 챠트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챠트화 강세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3) 대외 경제 정책

미얀마는 외환 부족 문제 해결을 대외 경제 정책 수립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으므로 수출입 정책도 이에 맞추어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7년부터 강화된 수입 규제 조치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정상 무역과 관련한 외환 취급 가능 은행은 미얀마 무역은행(MFTB, Myanmar Foreign Trade Bank), 미얀마 투자상업은행(MICB, Myanmar International Commercial Bank) 등 국영 은행 두 곳으로 한정되어 있다. 수입 시 건별로 허가를 받아야 하고, 수출 실적이 있는 업체에만 수입을 허용한다. 수출 시 수출 대금의 10%를 수출세라는 명목으로 징수하고 있는데, 이는 수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다른 국가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얀마의 독특한 제도이다. 수출세 납부 대상에서 제외되어 일종의 혜택을 받던 봉제업체를 중심으로 한 CMP(Cutting, Making, Packing) 업체도 2003년 10월부터 수출세를 납부하고 있다.

 

4)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

미얀마는 1988년 시장경제 체제 전환 후,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고 기초적인 외국인 투자법을 제정하였으나 관련 법규의 미비로 인해 외국인 투자 지원 정책이 다른 국가에 비해 미흡하다.서방의 경제 제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거의 중단된 외국인 투자가 최근 전력, 석유·가스 등 일부 분야에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의 경제 운용에 대한 불신, 열악한 인프라, 서방의 경제 제재 조치 등은 투자 진출에 있어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미얀마 민선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중국, 타이, 베트남 등 인접국의 투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도 미얀마에 경제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투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추세이다.미얀마는 1988년 외국인 투자법 제정 이후, 23년 만에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경제특구법[더웨이(Dawei) 경제특구법 포함]을 새로 제정하여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 주요 산업 동향

1) 광업 및 에너지 개발업

미얀마는 동, 아연, 주석, 텅스텐, 니켈, 철, 석탄, 석유, 보석류 등 다양하고 풍부한 광물자원을 갖고 있으나 생산량은 상대적으로 소량이다. 1994년 새로운 광산법이 제정되면서 외국 업체의 광물자원 개발 사업이 허용되었으나, 아직도 미얀마 정부가 생산과 수출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

 

중국은 미얀마와 정상급 교류 외교를 바탕으로 2009년 타광 타웅(Tagaung Taung) 니켈 광산, 모니아(Monywa) 지역의 레파타웅(Letpadaung) 구리 광산 등 주요 광산을 대거 확보하였다. 루비, 제이드(비취) 같은 보석류 역시 미얀마의 주요 외화 가득원으로 미얀마는 연간 20억 달러 ~ 30억 달러의 보석류를 수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야다나(Yadana) 및 예타군(Yetagun) 가스전을 개발함으로써 2001년부터 천연가스는 미얀마 최대의 수출품이 되었다. 미얀마 가스전 개발 사업에는 여러 국가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야다나 가스전에는 프랑스 토탈(Total), 미국 유노칼(Unocal), 타이 PTT가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예타군 가스전에는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Petronas), 일본 니폰 오일(Nippon Oil), 타이 PTT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대우인터내셔널이 인도 기업과 함께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Rakhine) 주 근처 A-1, A-3 해상광구에서 천연가스를 개발 중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08년 말 중국석유공사(CNPC, China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와 판매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벵골만-중국 서남부 간 송유관 및 가스관 건설 공사를 추진 중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3년부터 500MMcf/d의 가스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스 생산량은 예다나 가스전은 약 650MMcf/d, 예타군 가스전은 약 450MMcf/d으로, 연간 약 25억 달러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다.

 

2) 농림•수산업

농림·수산업은 미얀마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미얀마의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06/2007 회계연도에 1,800만 챠트에 불과하던 쌀 수출액이 2009/2010회계연도에는 139,100만 챠트로 크게 증가하였다.

 

전체 국토의 약 절반(3340만/6770만ha)이 산림 지역인 미얀마는 중국, 인도에 이은 아시아 제3위의 산림 자원 보유국이다. 주요 임산 자원인 티크(Teak) 원목의 식림 면적은 647,992에이커 상당이다. 티크 및 경재(硬材, Hardwood)의 수출은 벌목 지역의 확대로 인하여 최근 감소 추세이다.

 

미얀마의 수산물은 약 150개의 수출업체를 통해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오스트레일리아, 아랍에미리트(UAE, United Arab Emirates) 등 약 4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수출량은 전체 생산량의 약 10%가량이고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새우, 장어, 도다리, 병어, 민태(jewfish, 주피시), 갑오징어 등을 주로 수출한다.

 

3) 전력산업

미얀마는 전력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수요는 급증하는 추세이다. 미얀마의 전력 사정은 매우 열악해서 제1도시인 양곤(Yangon)조차도 단전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일부 지역은 시간제로 전기가 공급되는 실정이다.

 

송배전 설비가 낡아 전압이 일정치 않고 전력 손실률이 매우 높아 2000년대 초부터 전력 산업 발전을 위한 30년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6차례의 5개년 계획을 세웠는데, 1차 5개년 계획은 2000년~2001년부터 2005년~2006년까지이고, 6차 5개년 계획은 2030년~2031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송배전망은 230㎸ 18개 망으로 총 917마일, 132㎸ 24개 망으로 총 1170마일, 66㎸ 84개 망으로 총 1426마일 등 모두 합쳐 126개 망 3513마일을 운용 중이다. 변전소는 총 113개 소이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력 손실률은 여전히 높은 상태이다. 2009년~2010년 회계연도 미얀마의 송배전 손실률은 15.6%이고, 한국의 송배전 손실률은 4.5%이다. 송배전 손실률은 ‘1-(연간 전력 소비량/연간 전력 생산량)’의 식으로 계산한다.

미얀마의 2009년~2010년도 전력 생산량은 58억kWh이며, 발전 설비별 생산량은 수력 발전이 41억kWh로 가장 크다. 미얀마는 이라와디(Irrawady) 강, 친드윈(Chindwin) 강, 탄륀(Thanlwin) 강, 시타웅(Sittaung) 강 등 총연장 5600㎞의 강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평균 2500㎜의 강수량이라는 천혜의 수력 발전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반면 디젤과 증기 발전 가동률이 낮으며 외환 사정 악화로 연료 수입이 어려워 향후 상당 기간 동안 수력 발전 또는 가스 발전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4) 제조업

미얀마의 제조업은 농림·수산업에 기반을 둔 제조업이 대부분이며, 식음료 산업이 제조업 생산의 약 80%를 차지한다. 냉장 설비 투자 증가로 수산물 수출이 증대하였고, 수산물은 현재 주요 외화 가득원이다. 그리고 정제 공장에 대한 투자 증가로 1990년대 후반부터 정제 설탕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합판, 베니어, 가구 등 임업 관련 제조업을 내수 및 수출용으로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농림·수산업에 기반을 둔 제조업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수출을 전제로 한 봉제업이다. 봉제업은 제조업 가운데 외국인의 투자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2003년 7월 미국의 미얀마 제품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약 300여 개 봉제 공장에서 35만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던 봉제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 후 미국 대신 유럽, 일본 등의 대체 시장을 발굴하여 2005년부터는 다소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2008년 사이클론의 피해와 세계 경제위기가 겹쳐 성장이 지체되었다. 그런데 경쟁국들의 인건비 상승으로 2010년 이후 호황세가 지속되고 있다.

 

라. 무역 관련제도

1) 무역 관련 정부 부처 및 기관

미얀마 정부는 수출입 활동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수출입 시에는 상업부(Ministry of Commerce)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수입 허가 신청 시 관련 협회에서 수입 가격의 적정 여부 확인을 받아서 이를 제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은 미얀마제조업협회에서, 의약품은 미얀마의약품협회에서 적정 여부 확인을 받는다. 각종 협회들은 모두 미얀마상공회의소 소속이다.

 

2) 수입 규제 제도

미얀마 정부는 고질적인 외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격한 수입 관리제를 운영하고 있다. 수입자가 외환 계좌에 수입 대금 전체를 선예치한 후, 외환 잔고 증명서를 발급 받아 정부에 수입을 신청하면, 정부가 건별로 심사하여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수입 허가서 신청부터 신용장 개설까지 수입 대금이 은행에 묶이므로 수입 억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수입 금지 조치와 실제 상황은 다소 차이가 있다. 음료수, 과자류, 통조림, 술, 라면, 담배 등은 수입 금지 품목이지만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다. 반면 자동차는 수입 금지 품목은 아니지만 1998년부터 국영 기업인 UMEHL(Union of Myanmar Economic Holdings Limited)을 제외한 일반 업체의 수입은 금지되었다가 2010년 10월부터 상용차 수입이 자유화되었다. 반면 반덤핑 관세, 세이프가드 등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은 없다.

 

3) 관세제도

수입 시 부과되는 세금에는 수입 관세와 상업세가 있다. 관세율은 미얀마 관세청에서 발간한 관세율표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신국제통일상품분류(HS, 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 코드에 따라 최혜국대우(MFN, Most Favored Nation treatment) 관세율을 적용한다. 다만, 정상무역관계(NTR, Normal Trade Relations)나 일반특혜관세제도(GSP, 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 등에 대한 관세율은 없다. 그리고 일부를 제외한 모든 수입 품목에 대해서 수입 관세에 추가로 상업세를 부과한다. 2004년 6월 15일 의약품, 컴퓨터, 비료, 살충제, 석유제품 외 모든 품목에 대해 상업세를 일괄 10배 인상하였다.

 

미얀마는 2006년 3월 24일 상업세법을 개정하여 국경 무역에 한하여 상업세의 기준이 되는 수입 대금이 외화인 경우, 미 달러로 상업세를 징수한다. 이로 인해 적용 환율이 공인 환전 환율에서 시장 환율로 바뀜에 따라 양 환율의 차이만큼 상업세가 실질적으로 인상되었다. 이는 국경 무역을 신용장(L/C, Letter of Credit)을 통한 정상 무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정부는 국경 무역 지대에서의 일반 무역은 1 미국달러당 850챠트, 기타 일반 무역에 대해서는 1 미국달러당 450챠트의 환율을 적용하지만 유동적이다.

 

마. 교역 동향

2011년 현재 최근 3년간 미얀마의 수출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있는 반면, 수입은 정부의 수입 억제 정책으로 큰 변동이 없는 가운데 무역 수지는 흑자를 이어 가고 있다. 당분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다.회계연도 기준 2009년도~2010년도 미얀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1.5% 증가한 68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하였고, 수입은 8.2% 감소한 38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천연가스, 티크 및 경재(硬材, Hardwood), 콩류, 의류, 수산물 등이다. 주요 수입품은 기계 및 운송장비, 정유, 비금속 제품, 전기 기계, 직물 등이다.미얀마의 교역은 해상으로는 싱가포르, 육상으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타이, 중국, 인도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수출국은 타이, 인도, 중국,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이다. 주요 수입국은 싱가포르, 중국, 타이,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이다.미얀마의 10대 수출입 대상국과 수출입품은 다음과 같다.

 

미얀마의 10대 수출 대상국

단위: 백만 달러

순위

국 가

2005년~2006년

2006년~2007년

2007년~2008년

2008년~2009년

1

타 이

1,354.37

2,354.15

2,821.74

2,390.11

2

인 도

489.1

733.57

727.98

731.31

3

중 국

365.79

614.09

696.35

558.71

4

홍 콩

256.14

402.96

649.2

601.83

5

싱가포르

263.81

182.27

401.57

773.06

6

일 본

136.05

165.67

185.56

167.63

7

말레이시아

93.02

88.29

118.57

286

8

인도네시아

65.49

88.08

86.66

25.85

9

한 국

38.57

61.54

73.71

57.9

10

독 일

62.62

74.79

66.55

48.93

11

기 타

428.79

457.52

585.39

529.97

회계연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출처: 미얀마 중앙통계청(CSO)

 

미얀마의 10대 수입 대상국

단위: 백만 달러

순위

국 가

2005년~2006년

2006년~2007년

2007년~2008년

2008년~2009년

1

중 국

467.49

728.1

994.34

1,096.36

2

싱가포르

557.71

1,031.16

815.78

952.12

3

타 이

236.88

304.3

383.5

358.46

4

일 본

105.11

155.91

242.57

151.4

5

인도네시아

57.85

93.89

207.11

189.91

6

인 도

80.07

159.42

173.47

146.17

7

말레이시아

139.56

110.36

115.52

328.68

8

한 국

85.82

84.69

107.34

171.21

9

독 일

21.14

30.46

30.16

43.42

10

미 국

82.35

43.15

22.1

75.02

11

기 타

147.88

186.95

254.75

632.88

회계연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출처: 미얀마 중앙통계청(CSO)

 

미얀마의 10대 수출품

단위: 백만 달러

순위

품목

2006년~2007년

2007년~2008년

2008년~2009년

2009년~2010년

1

가스

2,031.0

2,532.5

2,166.0

2,642.3

2

봉제

278.6

282.5

265.7

257.3

3

티크

304.4

279.8

161.1

195.3

4

검은콩

304.0

274.7

238.3

418.9

5

경재

206.8

258.7

177.6

253.2

6

생선류

126.2

192.5

162.1

175.6

7

땅콩

81.5

137.0

221.8

129.9

8

녹두

146.7

109.9

172.1

259.9

9

새우

105.8

101.1

78.7

57.7

10

3.1

100.4

185.3

231.9

11

기타

1,634.8

2,144.3

2,342.6

2,259.5

회계연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출처: 미얀마 중앙통계청(CSO)

 

미얀마의 10대 수입품

단위: 백만 달러

순위

상품

2006년~2007년

2007년~2008년

2008년~2009년

2009년~2010년

1

기계류, 수송 장비

472.8

756.2

1206.7

818.0

2

정제오일

690.0

369.6

532.0

612.4

3

기초금속

205.9

219.2

303.1

332.2

4

합성섬유

184.3

212.3

136.2

130

5

식용유

83.2

192.2

268.3

162.7

6

전자제품

123.1

156.5

158.1

162.9

7

플라스틱

125.2

155.7

151.5

143.2

8

의약품

96.5

115.5

113.2

133.0

9

종이, 포장지

52.7

53.1

65.3

53.0

10

고무

36.7

52.2

43.0

58.5

11

기타

858.1

1064.3

1168.2

1200.3

회계연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출처: 미얀마 중앙통계청(CSO)

바. 투자 동향

미얀마는 풍부한 농산물과 광물 자원, 값싼 노동력, 중국·인도·타이와 접한 지리적 이점 등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석유·가스, 전력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더웨이(Dawei), 차욱퓨(Kyauk Phyu) 등에서 대형 심해 항구 프로젝트 위주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 진행 중이다.외국인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미국을 포함한 일부 서방국이 미얀마의 민주화, 인권, 마약 문제 등을 이유로 미얀마에 대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인프라 미비, 선진국들의 경제 재제 조치, 정부의 행정 불투명성 등은 외국인 투자 진출의 장애 요인으로 계속 작용하고 있으나 민선 정부 출범, 2014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의장국 수임, 2015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와의 규범 통합 등에 대한 기대감 및 최근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 개혁 개방 조치로 중국과 타이 등 주변국을 위주로 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다.특히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해상 천연가스 개발 성공과 중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규제 강화로 미얀마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의 외국인 투자 유치 현황

단위: 백만 달러, 기준: 2011년 3월 말(투자 허가 기준 누적치)

국 별

투자액

비 중(%)

산업별

투자액

비 중(%)

중 국

9,603

26.64

전 력

14,530

40.30

타 이

9,568

26.54

석유/가스

13,815

38.32

홍 콩

6,308

17.50

광 업

2,794

7.75

한 국

2,915

8.09

제조업

1,728

4.79

영 국

2,660

7.38

호텔/관광업

1,065

2.95

싱가포르

1,818

5.04

부동산

1,056

2.93

말레이시아

975

2.70

축산/어업

324

0.90

프랑스

469

1.3

교통/통신

313

0.87

미 국

244

0.68

공업단지건설

193

0.54

인도네시아

241

0.67

농 업

173

0.48

네덜란드

238

0.66

건 설

38

0.10

총 계

36,054

100.00

총 계

36,054

100

출처: 미얀마투자위원회(MIC, Myanmar Investment Commission)

[네이버 지식백과] 미얀마의 무역 관련 제도 (미얀마 개황, 2011.8,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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